“용산 문제 풀려야 진정한 사회 통합을 말할 수 있다”
보수 이론가인 윤여준 전 장관은 시대적 환경과 리더십의 부조화가 MB 리더십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흐름은 ‘삶의 질’ 쪽으로 가는데, MB 정권은 ‘경제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정운찬 카드를 쓴 건 상징성이 크며, 취지를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04호] 2009년 09월 07일 (월) 14:19:11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지난해 충북 충주에 허름한 농가를 구입했을 때만 해도 그는 주말에는 꼭 시골 생활을 하리라 맘먹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다짐이 자주 어그러진다. 그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부쩍 많아져서다. 보수 진영의 대표 이론가이면서도, 불합리한 대목에는 거침없이 내부 비판을 쏟아내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9월1일 만났다. 합리적 보수, 성찰적 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두루 만나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를 찾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그는 9월3일 개강한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의 교장을 맡아 새로운 리더십 발굴에도 나섰다. 총리 내정 관련 대목은 청와대 발표 후 추가로 인터뷰했다.

   
윤여준 1939년 충남 논산 출생.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경향신문 기자. 청와대 공보수석. 환경부 장관.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교장.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인사 중 가장 잘한 인사다. 중도 강화의 상징성이 잘 드러난다. 이제 그 취지를 살리는 일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총리에게 권한과 자율성을 충분히 줘야 한다.

정치적 함의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운찬 내정자 입장에서는 호랑이 등에 탄 격이다. 용기를 낸 걸 보니 그동안 정치적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박근혜와 이회창 등 충청권 출신 인사들에게는 예민한 반응이 나올 것 같고, 그보다 더 곤혹스러워진 건 민주당이다. 중도 어젠다를 선점당하기 때문에 좀 더 왼쪽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책은 더 선명해질 수 있지만, 집권의 길은 멀어진다.

안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세다.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안보 위기감, 이 두 가지 위기감이 그동안 대통령 지지도가 더 하락하지 않도록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최근 대통령이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면서 상황이 더 나아졌다. 국민은 지도자가 화해 모드를 만들면 좋아한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를 ‘국장’으로 하면서 DJ 지지자들의 마음이 풀어진 측면도 있다.

중도 서민 행보도 효과를 보는 건가?
당연하다. 그런데 우스운 건 지구상의 어느 정권이 서민을 안 챙긴다고 하겠느냐다. 기본 책무 중 하나지, 생색낼 일이 아니다. 1년6개월 동안 뭐 하다 이제야 서민 챙기겠다는 것인지.

지난 1년6개월과 달리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가 확실히 바뀐 건가?
MB 정권 들어서 내내 문제가 됐던 게 소통과 통합 아니었나. 갈등이 해소가 안 되고 쭉 오다가 DJ 서거하면서 화해와 통합이라는 화두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니까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화해와 통합을 말하려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용산 참사는 희생자 장례를 6개월 넘게 못 치르고 있고, 비정규직이랄까, 워킹푸어 계층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통합은 요원하다. 용산 희생자와 관련된 사람의 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약자들이 정부가 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고 판단하려고 할 것이다. 종교계에서 나섰던 분들도 정부가 이렇게까지 손을 놓고 있다는 데 자기들도 놀랐다고 하더라. 국민적 관심이 없다든지, 소수라든지 이렇게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진정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보수나 진보나 대통령이 무슨 얘기를 하면 진심이 무엇인지 의심부터 한다. 그게 다 말의 신뢰가 없어서다. 대통령은 신뢰가 첫째다.

보수 진영도 불만이 적지 않은 듯하다. DJ 국장도 그렇고, 북한 조문단을 만난 것도 그렇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잃어버린 10년을 내걸고 당선이 됐다. 집권 후에도 과거 10년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했다. 집권 세력이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과격한 어휘로 공격했다. 근데 DJ 서거를 전후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 화해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라고 얘기하더라. 그러면 설명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공격을 하다가 지금 와서 DJ를 그렇게 높이 평가한다면, 그럼 5년을 빼고 ‘잃어버린 5년’이라고 한다든지 뭔가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이 없다. 그러니 이해를 못하겠다는 거다.

중도 실용을 표방하고 출범했던 MB 정부가 촛불, 노무현 서거 정국 등을 거치며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중도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MB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성격이 분명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규모나 출신 정당으로 보면 분명 보수다. 그런데 어떤 철학이나 가치를 지향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도 실용을 얘기했는데, 이는 방법이고 과정일 뿐이다. 과정과 수단을 제시하고 국정을 이끌어가는 건 좀 우습잖은가? DJ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내세웠는데, 이건 상당한 식견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분권과 참여, 이런 게 기억이 난다. 근데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1년6개월이 지났는데  잘 떠오르는 게 없다. 747, 비핵·개방·3000이 가치는 아니잖은가.

국방 예산을 둘러싼 이상희 장관의 항명성 편지도 보수의 비판 정서를 반영하는가?

어처구니가 없더라. 정부 내에서 국정을 수행하는 장차관이나 각료랄까 그런 사람들이 기강이 어떻게 돼 있기에 저런 일이 벌어지는지. 보수·진보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 진짜 큰일이지. 보수가 그렇게 형편없다는 얘긴가.

지난 1년6개월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다고 보는가?

시대 환경과 한국의 시스템과 리더십이 안 맞은 것이다. 촛불도 그래서 나온 건데, 한국이 세계화에 편입되어 국민의식이 빠른 속도로 변해왔고 변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 보수당처럼 이코노센트리(경제 중심) 어젠다로는 사회 통합이 안 된다, 사회 중심으로 옮아가야 한다’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게 삶의 질이라는 건데, 하지만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경제 결정주의적인 태도를 많이 보였다. 이게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그 부분을 대통령도 많이 느낀 것 같다. 현실이 자꾸 달리 가니까.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이 느꼈는데 이게 전략적 전환이냐, 본질적 전환이냐는  잘 모르겠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이나 일본 민주당의 승리도 그런 시대적 흐름인가?

큰 흐름이다. 가치가 비슷하잖은가. 메가 트렌드인데, 대한민국이 그걸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 자체는 메가 트렌드에서 어긋나는가?

MB 등장은 국내적 요인이 많았다. 다 알듯이 징벌적 투표를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따지고 보면 지난번 대통령 선거가 사상 최저 투표율이었다. 유권자 비례로 보면 30% 지지를 얻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조문한 600만, 700만명은 대부분 투표를 안 한 사람이라고 본다. 장례 기간에 ‘꼭 투표하겠습니다’ 플래카드 든 것도 자기들이 투표를 안 함으로 해서 생긴 비극이라는 미안함과 죄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투표한다’고 다짐을 했으니 그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큰 투표에서 투표율이 높아질 것은 확실하다. 태평양이 잔잔하지만 밑에는 큰 해류가 흐르는 것처럼, 여권이 이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MB에 대한 찬성 반대를 떠나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각자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준 건 분명하다.

미디어법 처리도 논란이 됐다.

어떤 정권이든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놓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한 후 부작용을 수습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언론을 지배할 경우 나타나는 문제가 크다. 서구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 현상을 해석할 때 프라이머리 디파이너(Primary definer)와 세컨더리 디파이너(Secondary definer)가 있다. 매일 일어나는 각종 사회현상을 두고 어떻게 해석할지 최초로 규정하는 사람이 누구냐, 바로 소수의 지배계층이라는 것이고, 그런 해석을 대중에 전파하는 2차 정의자는 언론인데, 그 언론을 역시 소수의 지배계층이 소유한다면 대중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수 계층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8·15 연설 등은 의미가 있지 않은가?

여권이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얘기한 건 듣기 반갑더라. 그런 자세면 된다. 개혁은 내가 먼저 내놔야 남에게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영남권 한나라당 의원을 얼마나 설득하느냐다.

   
ⓒ전문수
윤 전 장관은 보수·진보를 떠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9월3일 문을 연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에는 보수·진보 명망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중대 선거구제라는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물론이다. 양원제로 가든지 비례를 확 늘려서 권역별 비례로 가든지 바꿔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당에 있을 때도 철옹성이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하자고 몇 차례 보고서 올렸는데 완강한 헤게모니 때문에 안 되더라. 대통령이 그거 하면 정말 큰일 하는 거다.

개헌은 어떤가?
87년 체제 얘기 많이 하는데, 20년 넘었고 그 사이 변화가 많았으니까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전반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모든 개헌 논의가 제도의 문제, 특히 권력구조에 관한 쪽으로만 집중되는 건 문제라고 본다. 정치가 이렇게 불신을 받는 게 마치 5년 단임제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어떤 제도나 다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사람 부분을 빼고 얘기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원집정부제 얘기를 계속 하는데 이건 이상이다. 권력의 속성은 집중이지 나누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MB가 이상득(형)과 권력을 나눈다고 하기에, ‘그러면 MB는 정말 성인이다’라고 농담을 한 적도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심지어 문명사적 전환기라고까지 얘기할 때는 상당히 탄력적인 정책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해야 한다. 따라서 나누려고 하지 말고 ‘견제’를 연구해야 한다.

권력의 속성이 ‘집중’이니까 제도로 분산시키겠다는 것 아닌가?
한 예로, 내치와 외치를 어떻게 나누나? 자로 긋듯이 나눠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지금은 내치와 외치가 분리되는 시대가 아니다. 지자체도 외교를 하지 않는가. 안보는 대통령이 하고 내정은 총리가 한다? 안보를 구성하는 분야가 일곱 개라는 학설이 있다. 경제가 첫째로 꼽히는 데 그럼 경제는 총리 권한에서 빼나? 그리고 과거 개헌할 때 일부 학자와 정치권이 단기간 내에 개헌안 만들어서 통과시켰는데 이제는 시민사회가 정치권보다 일찍 깊이 헌법 개정 문제를 연구해왔다. 따라서 개헌 문제는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사회 공론을 일으킨다는 생각으로 해야 하지 여야 합의로만은 어림도 없다.

정치권에서는 내각제 얘기도 많이 나온다. 
나도 근래에 와서는 내각제도 해봄직하지 않나 생각했다. 내각제의 가장 부정적인 요소가 정경유착인데 그 사이 한국 사회도 많이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연차 사건을 보면서 ‘아직 아니구나’ 싶더라. 박연차라는 사람은 지방 상공인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몇 백억씩 비자금 만들어 중앙 정치권에 살포한 걸 보면 대기업이 맘만 먹으면 그보다 더하지 못할 리는 없다. 아직은 위험한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보면 정치권이 거의 꼴찌다.

우리 정치는 이중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국회의원 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런데 이런 이중의 대표가 모두 국민의 지독한 불신을 받는다는 건 대표성의 위기이자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러니 직접 민주주의의 욕구가 자꾸 생기는 거다. 하지만 직접 민주주의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잖은가. 결국 제도권에서 이 욕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고민해야 한다. 리더십이 국민과 유리되면 어떻게 할 건가, 매번 국민이 직접 나서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투표할 때마다 징벌적 투표를 하면 그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은 민주·공화 양당이 대통령을 뽑는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직접 민주주의 욕구를 굉장히 많이 수렴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지식인도 걱정을 많이 해야 한다. 보수·진보를 떠나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나.

새로 교장을 맡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가 그런 고민의 산물인가?

그 정도의 역량은 없고, 이런 생각이다. 한국 사회가 꼭 정치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좋은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좋은 리더십이 하루아침에 팍 솟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지도자를 평소에 잘 길러야 하는 거 아니냐는 취지다. 35~ 45세가량 어느 정도 전문직을 갖고 있는 젊은 분들이 리더가 되려면 폭넓은 자질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다.

강사들 면면이 보수·진보 인사를 망라했다.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떤가. 누가 더 사회를 발전시킬지 경쟁하는 거지. 좀처럼 이런 강의에 나오시지 않는 분들인데,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다들 선뜻 응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다.
그런 목적의식은 전혀 없다. 다만 기존 정치권이 불신을 받고 있으니까 새로운 가치와 세력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갈망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의 목소리를 내자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또 다른 작동원리가 있으니까 쉽게 볼 건 아니다.

합리적 보수나 진보로 불릴 만한 인사가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 현대사가 갈등의 역사다. 정부 수립, 분단, 전쟁, 그 후의 남북 대결과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등 극도의 대결 구도가 지속되어왔고, 그러다보니 합리성이 발붙이기 참 어려웠다. 그나마 지금은 시대 상황이 변해서 합리적 생각을 하는 분들이 역할을 해야겠다 나선 것인데, 이것만 해도 많이 발전한 거다.

그래서 차기 리더십이 중요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 리더십이 중요하지 않았다. MB 선택할 때 어디 자질이나 정책을 충분히 검증했나? 도곡동, BBK 모두 난리 치다 끝났지. 정치권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이 있으니까 가능하면 거기에서 먼 사람을 고르려 애썼고, 이제는 철저히 검증해서 차악이 아니라 차선을 찾는 쪽으로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그만큼 시행착오하고 월사금 내고 학습을 했으면.

가장 앞서가는 차기 리더십은 박근혜 전 대표다.
가장 앞서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 리더십이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벌써 하락세 아닌가. 왜냐, 박 전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건 대부분 논평이지 구체적인 비전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뒤를 이어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제는 민족, 교육, 경제 등 주요한 국가 어젠다에 대해 자기 생각을 얘기해야 한다. 그걸 안 하고 있으면 이슈의 중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서거’가 장기적으로 신화가 됐는데,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 보수 진영에서는 반DJ, 반노무현으로 재미를 봤는데.
한국 정치가 늘 반대하는 걸로 유지된 면이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도 있고. 불행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작고 후 일어난 신화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시간이 가면 오히려 차분하게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DJ도 마찬가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있는 DJ를 찾아 화해했다고 한 건 어떻게 봐야 할까? 
그분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말했지만 관계가 독특하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 이회창 총재가 대선 후보가 되자 상도동 사람들이 그러더라. “상도동과 동교동은 오랜 세월 지독한 경쟁자였지만 동지였다. 이 관계를 당신들은 잘 모른다. 우리는 심정적으로 이회창보다는 DJ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대통령 YS와 DJ가 영수회담을 할 때도 두 분 표정을 보면 애증이 묻어났다. 그런 관계인데, DJ가 회복되기 어렵다고 하니 당연히 풀고 싶었을 거다. DJ 의식이 분명해서 서로 풀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좋은 본을 보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