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을 부르짖는 조봉암 선생
올해는 죽산 조봉암선생이 이승만정권에 ‘사법살인’ 당한 지 반세기가 됩니다.
이승만의 정치적 라이벌로 제 2, 3대 대통령 후보에 나서고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가 사법의 이름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환갑을 두달 남겨둔 1959년 7월 31일의 일입니다.
조봉암 선생은 강화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3.1운동때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하면서 나라사랑과 역사의식에 눈을 뜨고, 그때 막 프로레타리아 해방과 피압박 민족의 독립을 내걸고 성공한 러시아혁명에 빠져들었습니다.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엿장수를 하면서 아나키스트 박열 등과 흑도회를 조직하는 등 일제와 싸우다가 귀국하여 조선공산당의 조직을 주도하였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진영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악명높은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했습니다. 이때 고문과 동상으로 손가락 일곱매듭이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해방뒤 공산당과 결별하고 분단정부에 참여하여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되어 헌법제정, 특히 국민의 기본권 향상과 경제조항에 관심을 갖고 이를 관철시켰으며, 지주 출신의 한민당과 싸우면서 농지개혁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남한 대부분이 점령되었을 때 농민들이 인민군에 협력하여 봉기하지 않는 것은 조봉암 선생이 닦은 농지개혁도 큰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회 부의장을 두 차례 역임하고 이승만의 폭정이 거듭되면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민주주의가 짓밟히자 노동독재도 자본독재도 거부하는 혁신정치, 이승만의 허황한 북진통일에 대항하는 평화통일론을 내걸고 진보세력의 규합에 나섰습니다. 제 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혹독한 탄압에서도 ‘득표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 진’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제 3대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 조봉암 선생이 216만표 득표 획득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적수가 되었고 보수 양당(자유당과 민주당)으로부터 함께 배척받는 혁신진영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용공분자라는 붉은색이 덧칠되고 주변에 사신(死神)이 얼씬 거렸습니다. 그를 좌경으로 몰았던 인물들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에 앞장섰던 정치인ㆍ법조인ㆍ언론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봉암이 독립운동을 할 때에 민족을 배반했던 무리들이 반공의 간판을 달고, 반공 민주사회주의로서 진정한 민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애국자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저들이 조봉암 선생을 죽인 것은 1960년 제 4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를 제거하려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었고, 두 번째는 혁신정치ㆍ진보정치의 뿌리를 뽑으려는 사이비 보수(수구)세력의 책략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루어져 조봉암 선생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그로부터 불과 9개월만인 1960년 4월혁명으로 이승만과 자유당은 괴멸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은 조봉암 선생은 반세기가 되도록 ‘간첩’, ‘용공’의 너울을 벗지 못한 채 긴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지고, 친일과 분단과 사대주의 잔재들은 다시금 득세하여 역사를 반세기 이전으로 회귀시키려 합니다.
한반도는 지금 서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국 어선들이 전부 철수할만큼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남북에 도사린 극우ㆍ극좌 세력이 한반도를 또 다른 전쟁으로 치닫게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조봉암 선생의 선견지명이 현재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봉암 역시 평범한 인간입니다. 하여 그에게도 많은 약점과 과오와 실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파헤치고 비판할 것입니다. 아울러 용공의 너울 속에서 왜곡되고 묻히고 잊혀진 부분은 가감없이 드러내어 독자들의 심판에 맡기려 합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2007년 9월 18일 “이 사건은 정권에 위법이 되는 야당정치인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표적 수사에 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한 것으로 민주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적 탄압사건” 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형판결로 인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인만큼, 국가는 조봉암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 라고 결정하였다.
정부는 ‘사법살인’ 50주년이 되는 을해 조봉암 선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명예를 회복시키고 독립유공자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평전이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안중근평전>과 <장준하평전>에 이어 <죽산 조봉암평전>을, 권력의 언론탄압과 사이비 언론인들의 곡필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대표적인 정론매체인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게 되어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20여년 전 소련 공산주의가 멸망하고, 오늘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시장경제의 위기 속에서 ‘노동독재도 자본독재도 거부하는’ 조봉암 선생의 생애를 돌아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앞서 두 분의 평전 연재 때에 많이 읽어주시고 댓글과 추천을 하여 주신 분들께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연재를 하여 주신 <오마이뉴스>에 감사드립니다. (<안중근평전>은 며칠전 ‘시대의 창’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음을 보고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데 고마움을 드려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진보당 당원으로 평생동안 조봉암과 진보당 연구에 진력하시다 지난해 돌아가신 정태영 선생의 저작물, 조봉암 연구에 학구적인 열정을 바쳐 대단한 성과물을 얻어낸 박태균(서울대)교수님과 서중석(성균관대)교수님, <죽산 조봉암>을 쓰신 이영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학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저의 집필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시금 이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서툰 평전 작업은 계속하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리영희 선생, 송건호 선생으로 이어질 것이고, 20권의 마지막은 다산 정약용이 될 것 같습니다. 계속하여 성원과 편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