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재성 선생이 다음 날 문자를 보내주셨다.
"모처럼 제대로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석윤수경은 뒷풀이에서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포럼"이라 하였다.
주섭일 고문님은 노서경 선생님의 강의에 보충 말씀을 신나게 해주셨다.

프랑스 대혁명과 파리 꼼뮨을 통해서 온갖 실험과 경험을 해본 프랑스 사람들과'
혁명을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독일 사람들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설명해주셨다.

노서경 선생, 여느 이론하는 대학교수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 분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고 게다가 여성이었다.

실제 상황 속에서 역사 속의 인물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려 했다.
마구잡이로 개량주의자니 배신자니 단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파리 꼼뮨 이래 죽고 죽이는 유혈 사태는 서로 피하자는 것이
19세기, 20세기초 서유럽 지식인들의 합의였다고 한다.

장 조레스도 그런 합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받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 조레스는 마르크스주의의 큰 영향을 받았지만
이른바 "혁명주의자"들과는 다른 길을 갔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독일사민당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제2인터내셔널의 지시대로 하지 않고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랑스 풍토에 맞는 사회주의운동을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온갖 분파로 나뉜 프랑스 사회주의운동을 통합하였다.
프랑스사회당은 그를 개량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반전의 입장을 끝까지 지키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암살 당했다.
당시의 분위기에서 반전파는 독일의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미테랑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그의 무덤에 헌화하여
장 조레스가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던 애국자였음을 상기하고 선언하였다.

프랑스의 좌파가 보기에 장 조레스는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에 충실하고
공화국의 이념에 누구보다 충성스런 애국자라는 것이다.

박형규, 김제동, 석수경, 홍기표, 이종화, 그리고 주섭일, 이부영 선생님, 
멀리 이천에서 차를 몰고 달려와주신 안재성 선생에게 감사한다.

특히 안재성 선생은 소설 <경성트로이카>에서 이재유를 쓴 후 이관술, 이현상,
그리고 박헌영 평전을 연이어 썼으니 이제 조봉암을 쓸 차례가 아닌가?

배신과 정치적 사망과 부활, 도전과 패배... 극적이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두 부인과의 사랑 이야기도 그의 손으로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 될 듯하다.  

그래서 조봉암 전집을 드리면서 부탁하였으니 아마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그동안 노서경 선생님이 번역한 <장 조레스, 그의 삶>이나 읽어야겠다.